• '파우스트' 읽고, 선한 인간은 길을 잃지 않는다?

    2022. 12. 19.

    by. KAEY

     
    파우스트(영문 한글)(SAT 스토리북 6)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 괴테가 1773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831년에 완성한 희곡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쓴 작품이다. 독일의 실존인물 ‘파우스트 박사’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신과 악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그렸다.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판
    탑메이드북
    출판일
    201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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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어 노출용 키워드 : 파우스트 독후감, 파우스트 후기, 파우스트 줄거리 요약, 파우스트 요약, 파우스트 레포트

     

    "인간이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파우스트가 인간의 삶을 전부 투자하여 알아낸 진리는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진리와 종의 한계. 그때 파우스트 앞에 온 것이 '악'. 악은 스스로 말한다. '저는 '악함'입니다. '선함'을 만들어내는 존재죠.'

     나는 이 '악'의 대사가 너무나 인상 깊었다. 악의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고 선함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의 죄를 악하다고 판단하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 옳을까?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의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로 파우스트가 악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마을의 소문을 듣고 소문을 그레트헨의 오빠에게 전달한 무리의 죄가 클까. 이를 듣고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체 파우스트를 죽이려고 한 그레트헨의 오빠의 죄가 가장 큰 것일까? 아니면 에초에 그레트헨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한 파우스트가 죄일까. 죄의 시작점이 중요한지 종결점이 중요한지. 죽는 순간에도 소문을 믿고 여동생을 믿지 않은 체 악담을 퍼부은 그레트헨의 오빠는 악일까. 그레트헨 오빠의 입장에선 모든 것이 사실로 규정되었으니 죄의 원천은 그레트헨인 것일까... 

     

     

     

    ┃ "심판받았노라. 아니 구원받았노라."

     그레트헨이 결국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어머니를 독살한 죄를 파우스트 대신 뒤집어 쓰고 처형당한 순간의 대사. 이 부분은 내가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독일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모든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메피스토가 말한 '그는 심판받았다. Er wurde gerichtet.'
    • 신이 말한 '그는 구원받았다. Er wurde gerettet.'

     독일어로 보면 철자가 굉장히 유사함을 알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심판과 구원이 개인에 따라서 바뀔 수 도 있는 사소한 차이임이라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피셜 정보(작가 공인) 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나는 저렇게 믿고 싶다. 문학과 철학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니까. 마음먹기 생각하기 나름 이라는 뜻 아닐까..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지식을 쌓으며 얻은 진리, 파우스트가 얻은 진리는 모두 '인간은 나약하다'라는 것. 이것을 잘 알게 되는 순간은 악이 찾아 오는 순간. 욕망에 휘둘리며 행동하는 사람을 모두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작품 속 온갖 지식을 섭렵한 파우스트 조차도 악인 메피스토에게 내내 휘둘리는데, 일반인들은 당연히 악에 휘둘리는 것이다.

     내 스스로의 삶에서 누구 하나 무시한적 없고, 욕을 한적 없고, 선량한 행동만을 해 미움을 사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사람에게 미움받고 나쁜 평가를 받는 것에 두려움을 얻은 경험은 많지만.. 내가 그러한 행동, 누군가를 미워하고 반대로 욕망에 휘둘려 미워하는 등.. 을 절대 하지 않았다 말은 하기 어렵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렵듯이. 

     메피스토가 찾아오는 순간마다, 게으르고 나약하고 변태적이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나, 그리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자기 수양이 뛰어난 사람일 지라도 이러한 욕망에 안 빠지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게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 이라는 존재이다. 

     그레트헨과 파우스트의 이야기는 정말 비극적이고 천인공노할 이야기이지만, 인간이기에 할 법한, 해야 하는이 아닌. 어딘가에서는 발생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

     

     

     

    ┃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방법.

     작품 속 신이 언급한다. "인간이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니, 본능이 아무리 방해해도 선한 인간은 길을 잃지 않는다."

     이는 동서양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고 온전해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고 온전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악'에 휘둘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선함을 추구하려는 행동과 생각을 가지는 것. 이것이 사상가들이 말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봤다. 

     죄를 행했음에 좌절하지 않고, 인간이기에 저질렀을 수 있는 일을 하고 난 후 그레트헨처럼 선을 추구하는 의지를 가지고 괴로움 속에서도 악을 반성하고 자기 죄를 끊임없이 뉘우치는 행동이 인간이 행할수 있는 최선이다. 

     이 행동을 했기에 그레트헨은 악을 행했음에도 천사들이 '언제나 그침 없이 노력하는 자, 우리의 구원을 받는다' 라고 말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아이를 우물에 빠뜨려 죽인 그레트헨이 천국에 가는 것이 옳은지.. 그레트헨이 낳은 아이는 자신에게 있어 악의 증거였으니, 원망스러웠을까.. 알 수 없는 이야기. 

     

     

     

    좋은 마음으로 행했다면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파우스트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행했지만 선량한 노부부를 불태워 죽인 것. 작가가 의도적으로 파우스트를 파멸로 이끈다. 우리 인간은 멀리 볼 수 없고 착각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선한' 마음으로 한 행동이 '악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 (2부)

     돈과 명예, 정복욕 등 세속적인 가치를 '선한 것' 이라 판단한 것의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보편적인 인류의 행복을 위해 행동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악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는 것.

     사실 악한 행동을 한 파우스트는 신에게 용서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었지만. 그레트헨과 신의 사랑이 파우스트의 악을 용서했기에 파우스트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언젠가 악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스스로에게 무한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만을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악한 행동을 저질러도 '멋지게 노력해서 꾸민 나' 와 '욕망에 휘둘려 못난 행동을 한 나' 를 안아주고 포용해줄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을 가진 존재(작품 속에선 신을 의미) 가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

     기독교를 강하게 믿는 건 아닌데, 기독교적 색체가 분명 강한 작품이기에 용서나 구원, 신,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뭐 개개인이 믿는 신념이나 신을 대입해서 생각하면 편할 듯! 근데 굳이 굳이 신을 대입해서 꼭 신을 믿지 않아도 된다. 아가페적인 절대적인 용서와 사랑을 해주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사실이니.

     

     

     

    저는 '악'입니다 '선'을 만들어 내는 존재죠.

     메피스토는 작품 속에서 '악'을 상징하지만, 정말 '악'이라기 보기는 조금 어렵다. 

     파우스트는 직접 '메피스토 같은 이상한 놈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고 말을 하기도 하고, 메피스토는 인간을 동정하기도 하고 파우스트에게 휘둘리기도 빌빌대기도 하는 캐릭터이기에. 이는 작가(괴테)의 의도가 많이 담겨있다.

     작품 내내 메피스토는 스스로를 '저는 '악'입니다. '선'을 만들어 내는 존재죠' 라고 꾸준히 말한다. 작품 초반 인간은 나약하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파우스트에게 나타나 젊음을 주고 삶의 원동력을 준 것은 메피스토이다. 그 이후 파우스트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악'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에 대해 말을 한다. '악'을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쓸모 없는 에너지 소모의 재료가 될 것이다. 내가 '악'에 휘둘린다면 악한 행동을 하게 되어 악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내가 '악'을 내 스스로의 성장 발판으로 생각한다면 이를 이겨내고 더욱 '선'을 행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필요악. 세상에 악이 있기에 세상은 완전해져 간다는 것. 선한 것만 있다면 불완전하다는 사실. 흰색 도화지에 흰색 물감으로 색칠한다면 아무런 그림을 완성할 수 없듯이. 

     중요한 것은 '못난 나'를 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악한 나, 병신같은 일을 저지른 나도, 추악한 욕망을 가진 나도, 어차피 존재하는 것이니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것이니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좌절에 빠지더라도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 

     그럼에도 나를 사랑만 하고 용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과 자기 비난 역시 필요하다는 것. 남을 비난하고 욕설하는 것이 발생했을 수 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이런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인간에게 무엇이 최선이고 뭐가 당연한 일인지를 가슴 속에 머리 속에 기억하는 것. 

     '못난 나'를 미워하라, 하지만 그럼에도 용서 해라. 불완전하고 절절대며 낑낑대다 다쳐도 그 순간 아파하며 소리치고 괴로워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실패와 후회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용기. 길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행동 모든 것이 '정답'이 된다.

     

     

     

     맺으며

     요즘 글을 읽는게 좀 힘들어졌다고 해야할까. 많은 글을 읽는 것이 좀 버거워진 것 같아서, 고전 소설 (룬의 아이들) 같은 거 읽다가 철학쪽 소설을 읽어보자 싶어서 읽어봤다. 파우스트라는게 사실 판타지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등장 인물의 이름 이기도 해서.. 궁금해서 한 번 손대봤으나 생각보다 글이 너무 난해하고 복잡하고 힘들었다. 뭔 철학책이지만 소설같은 표현이 많은지.. 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고 읽은 계기는 하찮았으나 끝은 뜻 깊었던 책. 나중에 나이를 먹고 읽어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디서 하나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도 별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기억에 남기고 싶어서 글을 작성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지식과 견문이 넓어지는 내가 되기를.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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